점토판과 파피루스, 인류가 최초로 생각을 박제한 방법

점토판과 파피루스, 인류가 최초로 생각을 박제한 방법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을 켜고 메모 앱에 오늘의 할 일이나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습니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끝나는 이 간단한 행위 뒤에는, 수천 년 전 생존과 기록을 위해 돌과 풀을 쥐었던 인류의 처절한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인간은 왜 그토록 무언가를 남기려고 했을까요? 오늘은 인류 기록 역사의 첫 페이지인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과 이집트의 파피루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인류 최초의 메모장, 단단하고 묵직했던 수메르의 점토판

처음 제가 기록의 역사를 공부했을 때 가장 놀랐던 점은, 인류 최초의 기록이 아름다운 시나 문학이 아니라 '영수증'과 '장부'였다는 사실입니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던 수메르인들은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머릿속 기억만으로는 누가 누구에게 양을 몇 마리 보냈는지, 곡물을 얼마나 빌려줬는지 증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인간의 기억력에 한계를 느낀 것이죠.

그들이 주변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인 '진흙'을 택한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강가의 고운 진흙을 이겨서 납작한 판을 만들고, 갈대 끝을 뾰족하게 깎아 진흙이 마르기 전에 꾹꾹 눌러 글자를 새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쐐기문자(설형문자)의 시작입니다.

내가 직접 점토판에 글을 쓴다고 상상해 보면, 결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점토판은 무겁고, 한 번 말리면 수정하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문서라면 불에 구워 단단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불편한 점토판 덕분에 수천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도 그 당시 수메르인들의 세금 납부 내역과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이 나면 타버리는 종이와 달리, 점토판은 불에 구워지면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아날로그 특유의 강력한 보존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가볍고 우아한 혁신, 이집트의 파피루스

비슷한 시기, 이집트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기록 매체가 등장합니다. 나일강 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풀, 바로 '파피루스'입니다.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 줄기를 얇게 찢어 가로세로로 엮은 뒤, 망치로 두드리고 말려서 매끄러운 '종이 형태'의 매체를 만들어냈습니다.

파피루스의 등장은 기록 문화의 엄청난 혁신이었습니다. 무거운 점토판을 들고 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돌돌 말아서 보관할 수 있는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오늘날의 태블릿 PC만큼이나 가볍고 혁신적인 휴대성을 자랑했습니다. 갈대 펜에 검은 잉크를 묻혀 부드럽게 글을 써 내려가는 손맛은 기록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주었습니다.

그러나 파피루스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습기'에 취약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건조한 이집트 사막 기후에서는 수천 년을 버텼지만, 조금만 습한 지역으로 넘어가면 곰팡이가 피고 썩어 없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나 로마로 수출된 파피루스 문서 중 상당수가 기후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혁신적인 휴대성을 얻은 대신, 점토판이 가졌던 영원성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초기 기록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수메르의 점토판과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록의 역사는 언제나 '보존성'과 '휴대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의 밀당이었습니다. 더 오래 남기고 싶을 때는 무겁고 단단한 재료를 찾았고, 더 널리 퍼뜨리고 싶을 때는 가볍고 유연한 재료를 찾았습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거나 나만의 노트를 정리할 때, 우리는 '어떤 앱이 좋을까?', '어떤 수첩을 살까?' 고민하곤 합니다. 하지만 수천 년 전 선조들이 증명했듯, 중요한 것은 매체의 종류가 아니라 '망각하지 않기 위해 지금 내 생각을 남기는 행위' 자체에 있습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진흙을 빚었고 풀을 엮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을 켜고 메모를 남기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그들과 다르지 않은 인류의 본능인 것입니다.

3줄 핵심 요약

  • 인류 최초의 기록은 문학이 아닌 상거래를 증명하기 위한 '영수증'과 '장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수메르의 점토판은 무거웠지만 불에 탈수록 단단해지는 최고의 '보존성'을 보여주었습니다.

  • 이집트의 파피루스는 가볍고 쓰기 편한 '휴대성'의 혁신을 이뤄냈지만, 습기에 취약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2편에서는 파피루스의 공급이 끊기자 인류가 찾아낸 번뜩이는 대안,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와 지식이 곧 권력이었던 중세 시대의 '필사본'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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